작년 여름, 친구와 같이 준비한 정부과제가 서류통과를 해서 상암에 발표평가를 받으러 간 적이 있다. 발표평가 후, 오랜만의 서울나들이 이기도 하고 해서 내려가기 전 맛있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때쯤 ‘면식수행’이라는 타이틀로 글을 쓰시는 분의 블로그에서 ‘육수가 제대로인 냉면집’이라는 글이 떠올라, 청계천을 따라 걸으며, 수많은 날파리들과 싸우며 그 냉면집, ‘우래옥’으로 갔다.
그때 먹었던 냉면은, 정말 부산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맛이었다. 부산에서 먹어본 냉면들은 일단 ~~면옥 으로 끝나는 냉면전문점이라 하더라도, 내어올 때부터 들어있는 양념장 때문에 육수가 빨갛고, 일단 식초와 겨자는 무조건 넣고 시작한다. 또 면은 일단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것이 부산에서 내가 먹던 냉면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런데 서울 냉면은 정말 달랐다. 일단, 전혀 자극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 맛 안 나는 줄 알았는데, 슴슴하면서 담백한, 쉽게 말하면 시원한 갈비탕의 육수 맛이 느껴졌다. 오히려 여기서 내가 부산에서 봐 온 것처럼 식초와 겨자를 많이 넣으면, 오히려 그 맛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
부산에 내려가서 다른 냉면집을 가봤지만, 그때의 그 맛은 전혀 나질 않았다. 그렇게 ‘정통’ 냉면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고, 서울, 그리고 서울 근교에 제대로 하는 냉면 집들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친구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 냉면집을 다 한번 가보자고 약속을 했었고, 그렇게 이번 여름, TOPCIT 성적우수자 수상을 위해 서울로 오게 된 친구와 같이 마포에 ‘을밀대’ 본점을 가 또 다른 냉면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가을이 되어, 친구의 대학원 구술고사를 보고 또다시 냉면을 먹으러, 이번에는 충무로의 ‘필동면옥’에 가게 되었다.
갔다와서 알게 되었는데 이번 미쉐린 가이드(미슐랭 가이드) 서울에 빕 구르망 (3만 5천원 이하의 합리적인 가격에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음식) 리스트에 필동면옥이 올랐다.
주소 : 서울 중구 서애로 26
영업시간 : 매일 오전 11시 - 오후 9시 (2, 4주 일요일 휴무)
가격은 을밀대와 같은, 1만원이다.
4호선 충무로역에서 내려 느린걸음으로 10분정도, 조금 걸어 들어가면 보이는 필동면옥은 가게 외형, 내부 인테리어로 볼 때는 오랜 역사가 있음직해 보였다. 지하철에서 필동면옥에 대해 찾아보니, 냉면에도 여러 파가 있는데, 필동면옥은 의정부파의 대표적인 냉면집이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토요일 11시 40분쯤으로, 점심시간이어서 어느정도의 기다림은 생각을 하고 갔는데, 웬일인지 자리가 있어 바로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냉면 두 개와 제육 반 접시를 주문했다. 반 접시는 메뉴에는 없지만, 메뉴 가격의 반, 고기 양도 반으로 해서 주신다. 여기는 제육과 수육 메뉴가 있는데, 제육은 돼지고기이고 수육은 소고기로 만든 것이다.
제육 반접시가 먼저 나와 양념장에 먹어보니, 돼지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아주 맛있었다. 같이 먹던 친구가 양념장을 유심히 맛을 보더니, 소주 냄새(알코올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난 전혀 몰랐는데, 양념장에 코를 가져다 대니 냄새가 확 올라왔다. 그 뒤로는 이상하게 먹을 때 마다 알코올 향이 올라왔는데, 그렇지만 맛은 정말 좋았다.
곧이어 냉면이 나왔다. 냉면 위 고춧가루가 한껏 올라가 있는 것이 의정부파 냉면의 특색이라는데, 역시 고춧가루가 바로 보인다. 육수 맛은, 역시 훌륭했다.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하면서 깔끔한 뒷맛이 최고였다. 나는 이 슴슴한 맛이 좋아 식초와 겨자는 넣지 않고 먹는데, 역시 넣지 않아도 그 담백한 맛이 혀에 맴돌아 냉면을 ‘진짜’ 냉면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반 정도 먹다가, 친구의 냉면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 냉면 한 그릇을 새로 받았다. 서로 1.5그릇씩 먹다보니, 다 먹었을 때에는 배가 아주 불렀다. 이렇게 오늘까지 가본 곳이 을지로4가 우래옥, 마포 을밀대, 충무로 필동면옥이다. 다음 번에는 또다른 냉면 집을 더 찾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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